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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정읍시민뮤지컬단 캐스팅 공개 #최재형 | 오승옥  2024 뮤지컬 그날을 기약하며2024.11.10 일요일 / 오후 4시/ 연지아트홀----------------------------------우리의 함성이...
28/10/2024

2024 정읍시민뮤지컬단


캐스팅 공개
#최재형 | 오승옥

2024 뮤지컬 그날을 기약하며
2024.11.10 일요일 / 오후 4시/ 연지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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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함성이
잠자는 숲을 깨우듯
어두운 이 세상
깨우리 잊지 말자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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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날을기약하며 #정읍 #정읍시민뮤지컬 #갈라 #문화예술창작집단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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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2024

#새전북신문 #온누리칼럼 #집현전오박사 #마을활동가
#통문 #사발통문 #소셜미디어 #SNS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시대 소셜미디어 통문, 그리고 사발통문

'SNS'는 'Social Network Service(또는 Social Networking Service)'의 약자로 영미권에서는 소셜미디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우리 언론에서도 소셜미디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소셜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개방성에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소셜미디어가 있었을까?
필자의 의견은 그렇다이다.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했던 것이 통문(通文)이 아닌가 싶다.

통문(通文)이란 조선시대에 민간단체나 개인이 같은 종류의 기관 또는 관계가 있는 인사 등에게 공동의 관심사를 통지하던 문서다. 전달수단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려준다는 것에서 최근의 소셜 미디어(SNS)와 비교된다.
이 같은 통문은 원래 서원의 건립이나 증축, 문중(門中)에서 친척들에게 알리는 통지문이거나, 조상의 문집 발간이나 향약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통문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조선이 선비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1626년(인조 4년) 6월 영남의 유생들이 통문을 돌려 관찰사를 성토하여 마침내 방백(方伯) 원탁(元鐸)을 물러나게 한 일이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감사 김성일(金誠一)이 좌도의 감사로 임명한 일에 대해 우도 사민(士民)들이 통문을 돌려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김성일을 머물러 있게 하여 달라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려 김성일을 그대로 머물게 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진왜란·병자호란 때에는 모병(募兵)과 군량의 조달을 위하여 구국의 통문들이 작성되어 의병의 조직화에 이바지하였는가 하면, 민란이나 혁명을 일으키려 할 때에도 거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협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통문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통문은 간혹 지방관의 진퇴문제를 논의하는 매체로도 이용되면서 숙종 이래 더욱 성행하여 국정을 좌우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지자, 이러한 폐단을 규제하기 위해 조정에서 이를 엄히 다스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정에 출사할 길이 막혀버린 선비들은 고향에 은거한 채 통문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 내용은 통지, 문의, 선동, 권유 등 다양하다. 일반 편지(서신)와 다른 점은 편지(서신)는 개인간의 친근한 개인적인 연락을 할 때 쓰는 글이지만, 통문은 단체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특징이 있다.
선비들은 통문이 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통문은 요즘의 SNS의 기능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1893년 11월 전봉준도 고부관아를 점령하고 농민군들이 봉기(蜂起)할 것을 맹약하였다. 그 내용을 곳곳에 알릴 때 이들은 봉기를 준비하면서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문서인 사발통문을 이용하였다.
그냥 기록해 두는 문서가 아니라 비밀리에 돌려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사발통문의 거사계획은 고부봉기와 무장기포, 백산봉기, 황토현 대첩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위키백과에서는 사발통문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분데스리가의 우승 트로피 마이스터샬레(Die Meisterschale)가 사발통문과 유사한 점이 있다. 분데스리가 창설 이전부터 이 트로피를 들어왔던 역대 우승팀들의 우승년도와 이름이 트로피 앞면에 원형으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서도 왕에게 뭔가 요구할 때 주동자를 알지 못하게 둥근 리본 형식으로 이름을 쓰는 ruban rond(뤼방 롱, 둥근 리본)이라는 방법이 있었다.
영어권에서는 round robin(라운드 로빈)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이 말은 '리그전'의 의미로 변형되어 쓰인다.

일본어로는 가라카사렌판조(傘連判状, 산련판장)이라고 하며, 잇키를 시도할 때 맹세문으로 사용되었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 이것이 모리 모토나리의 모리 가문의 고유 정책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모리 가문이 아키 고쿠진 잇키의 지도자격 가문이었기 때문. 실제로 아키 고쿠진 잇키의 산련판장도 몇 개 남아있다.”

이 같은 사발통문은 지난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동학농민운동 기록물의 일부로 등재되었다.
부패한 정부와 외세에 저항한 민중봉기운동으로써의 세계사적 의의를 인정했고, 특히 당시 사발통문은 동학농민혁명이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사건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물으로써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승옥(마을활동가·관광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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